플레이 하는 내내 느꼈던 걸 짧게 한 줄로 읊자면, 이렇습니다.
몸만 어른이고 정신상태는 4살박이 쳐딩이 따로 없네요.
음 좀 뭐랄까… 이건 연애 루트가 아니라 정신나간 쳐딩 갱생 프로젝트를 한 건 해낸 듯한 기분이 듭니다; 어떤 분들은 전작 Under the Moon의 세나+세이쥬를 보는 듯한 느낌이라고도 하시길래 플레이 전에 조금 걱정을 했었습니다만. 귀축도 아니고 애증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(?) 변태에
① 마계의 햇님 : 에반스는 기본적으로 밝고 쾌활한 성격이지만 그 만큼 본성을 드러냈을 때의 공포감이 대단히 효과적으로 조성되어 소름이 오싹끼치는, 양면성을 지닌 캐릭터입니다. 기본 공개설정대로 본가는 마법연구소로, 거대한 마력을 품고 태어난 이 아이는 어린 시절부터 여러가지 실험을 당하며 암울한 유년기를 보내왔기에 상대방의 마음을 전혀 이해도 못하고 감정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 밖엔 할 수 없는 가엾은 아이죠. 뭐랄까, 좀…… 사람의 온기를 그리워 하면서도, 사람을 제대로 사랑하고 사랑받는 방법을 모른다고나 할까요.
에반스의 심리상태를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는 대사라고 생각해서 골라봤습니다. 자기를 배신하면 죽일거라느니 웃는 얼굴로 거친 말을 하며 쿠루미를 경악시키지만 사실은 버림받아 혼자 남는 게 무서웠던 거죠. 서로 밀고 당기는 달콤한 연애감정이 아니라, 어떻게 보면 모정을 바라고 있었던 게 아닐까싶네요. 사실 델타를 졸졸 따라다니는 것도 마치 아빠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조그만 아들같이 느껴졌었거든요. 그래서 전 엔딩을 보며
아들 하나 키워낸 기분이 들었……에반스 루트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은 부분이 크게 3가지가 있습니다. 우선은,
시나리오 / 에반스의 인식변화도 중요하지만, 사실 에반스 루트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다뤄줬어야 하는 부분은 의절했던 본가와의 관계회복이어야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. 과거 이야기를 너무 흐지부지하게 해놔서 여간 실망한게 아니었네요. 이거 뭐 대체 어쩌라는 건지-_-; 그리고 사실은 에반스와 연인으로써의 첫 거사(?)를 치루는 부분도 납득하기가 힘들었습니다. 뭘 어떻게 하면 그렇게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어물쩍 H를 할 수 있는건지.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… 클라이막스 부분도 뭔가 흐지부지한 것이, 정말 말이 아니었습니다. 시나리오 자체가 상당히 약했어요. 에반스도 엔딩이 여러개가 있었다면 좀 더 내실있는 시나리오가 나왔을텐데.
쿠루미의 태도 / 의외로 자신이 처한 상황을 담담히 받아들이던 쿠루미는, 여지껏 꿈이라고 믿어왔던 것이 전부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패닉에 빠지게 됩니다. 그 이후로는 방구석에 처박혀서 나오지도 않고 불러도 나오지도 않고 완전 이기주의의 극을 달리게 되죠. 뭐 보통 여자아이라면 당연히 그럴거라고 이해는 되지만…… 자기 입장은 하나도 생각해주지 않는다며 에반스를 이해 못 하겠다고 내적 갈등을 겪고 있던 주제에 어떻게 그렇게 갑자기 태도를 손바닥 뒤집듯이 180도 바꿀 수 있는 걸까요? 클라이막스에서 에반스에게 ㄱㄱ당하며 무한이기주의에서 성모님으로 급변하는 쿠루미를 보며 할 말을 잃었습니다. 밑도 끝도 없이 "그 동안 내 생각만 해서 미안해." 한마디만 툭 던지면 이걸 대체 어떡하라는 건지. 심적 변화 과정도 보여줬더라면 갑작스럽게 돌변한 쿠루미의 태도도 어느정도 납득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. 전작 UtM의 히로인 아쉐보다는 개념이 잡혀있는 아이라고 생각해서 아껴왔지만, 별로 그럴 필요성이 없는 하찮은 히로인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.
오노 다이스케 / 이렇게 약하고 흐지부지한 시나리오임에도 제가 클라이막스에서 눈물을 쏟을 수 있었던 것은, 역시
오노상의 연기가 훌륭했기 때문이었습니다. 사실, 대사나 스토리 진행 과정을 보면 전혀 눈물이 나올 구석이 없었어요.
대사의 반 이상은 에헤헤~ 하며 웃었을 듯한 오노상의 광기 어린 연기는 듣는 이로 하여금 오싹하게 전율을 일게 했습니다. 처음엔 밝고 쾌활하게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소년을 보여주시며 간혹 등신같기까지 했었는데 말이죠-_-;; 손바닥 뒤집듯이 반쯤 잠긴 음색으로 소용돌이 치는 감정을 마침내 폭발시키며 미쳐버린듯한 아이를 표현하시는데…
여지껏 들어왔던 오노상의 연기 중 가장 최고였습니다. 부드럽고 밝은 목소리로 조곤조곤 속삭이며 공포감을 조성하시던 연기도 소름이 돋았었구요. 울며 울며 가슴을 쥐어 뜯는 연기에는 저도 같이 울어버렸습니다. 그런데 비명(?) 지르는 건 많이 어색하셨어요… 그 어색함은 프린세스 나이트메어때랑 하나도 안 변한 것 같네요;; 에반스의 눈물도 심금을 울렸지만 이 악물고 울음을 참아가며 악을 쓰는 오노상의 연기가, 저는 훨씬 더 가슴에 와 닿았더랬습니다.
② 애정과 집착 : 결혼까지 해서 행복한 핑크빛 미래를 암시해주는 1번 엔딩과 달리, 2번 엔딩은 배드엔딩으로 결국 에반스의 마음을 완벽하게 돌리지 못한 쿠루미의 비참한 최후(?)를 보여주고 있습니다. 연구 중단으로 쿠루미에게서 손을 뗀 델타에 이어 쿠루미에게 흥미를 잃고 새로운 장난감을 찾아다니다가 싫증이 나면 다시 쿠루미를 찾는 에반스를 볼 수 있는데, 이것 참 기분 찜찜한 엔딩이로군요. 델타에 대한 에반스의 마음을 가장 잘 담아놓은 대사라고 생각해서 캡쳐했습니다. 결국 에반스는 델타를 역할모델로 삼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죠. 쿠루미는 재수없게 그 사이에 껴서 결국 이도저도 아닌 입장이 되었다는 것이 2번 배드엔딩의 주제였습니다.
그리하여 에반스 루트를 완료했습니다.
오랫만에 내실있는 리뷰 포스팅 쓰려니 지치네요. 뭐가 이렇게 하루종일 걸려;;;;
다음 타자는 델타씨 되시겠습니다
♡